현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철골 구조로 건설되고 외벽에도 철강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인류가 철을 가지고 건축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18세기 후반까지의 제철기술로는 대량의 철강재를 제조하기가 만만치 않아 하나의 건물을 완성할 정도로 많은 철강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철강 가격도 매우 비싸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철강이 건축에 이용된 대표 사례를 들자면 1851년 영국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현재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건축된 수정궁Crystal Palace을 그 목록의 맨 처음에 올릴 수 있다.
정원사 출신 기술자인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수정궁은 가로 124미터에 세로 564미터로 약 6만 7,000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30만 장의 유리와 4,500톤의 주철로 건설되었는데,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대형 구조물이었다. 그때까지 건물이라면 목재나 석조로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던 관람객들은 투명하게 빛나는 벽과 지붕, 그리고 경쾌하면서도 유려한 맵시를 자랑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물에 놀랄 수밖에 없었으며 수정궁이라는 건축명과 같이 유리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수정궁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조명 받는 이유는 철강을 규격 재료로 만들어 조립한 최초의 건물이며 철강재의 우수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건물이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규격화된 철강 프레임과 벽면을 구성하는 122×30센티미터의 규격 유리를 기본으로 사용하여 조립해 만든 덕분에 6개월이라는 짧은 건축기간에 완성할 수 있었으며 시공비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꺼운 벽체가 사라진 투명하고도 단순 명료한 건축 미학, 표준화된 조립 부품의 대량생산에 기반한 시공, 그리고 6개월밖에 안 걸린 공사기간과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한 경제적 합리성 등 모든 측면에서 수정궁은 이전의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141일 동안 당시 영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 박람회를 다녀갈 정도로 수정궁의 탄생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한편 수정궁은 철강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혁명의 국가인 영국을 상징하는 건물로 사랑을 받았으나 1936년 화재로 아깝게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