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에는 ‘궁즉통, 통즉변, 통즉구(窮則通, 通則變, 變則久)’라는 말이 있다. 막히면 통하게 되어 있고, 통하면 변하게 되어 있고, 변화하는 것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혁신(Innovation) 역시 궁즉통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철강산업에서의 기술 혁신도 마찬가지다.
도가니제강법을 탄생시킨 집념
1740년대 영국의 시계 제작공이던 벤저민 헌츠먼은 시계에 사용되는 스프링의 성능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당시에 시계 스프링 재료로 사용되던 침탄강(blistersteel)보다 더 우수한 철강재를 만들 수 없을까 궁리한 끝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도가니제강법(Crucible Process)’을 개발했다.
도가니법으로 제작된 강(鋼)은 기존 방식으로 제작된 강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도, 균일성, 재질 면에서 모두 뛰어났다. 도가니제강법은 전 세계 제강산업에 혁신을 가져왔고 근대 제강법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헌츠먼의 집념이 철강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도가니제강법의 탄생을 낳음

하지만 도가니제강법에도 한계는 있었다.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강 수요는 급격히 늘었지만 도가니제강법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수술기기, 용수철 등 중요한 분야에서만 쓰였다.
포신 개선 노력이 대량생산 낳아
강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새로운 제강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베세머였다. 베세머는 크림전쟁에 사용될 대포를 제조하면서 포신이 발사 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깨지는 것을 보고 우수한 강철을 생산하려고 노력했다. 1년여 동안 용선에 공기를 불어넣어 탈탄(脫炭)하는 실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했다. 그러던 중 고정된 용기에 350㎏의 용선을 담고 0.8~1.0기압으로 공기를 불어넣는 실험을 했는데, 처음에는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다 10분 후에는 불길이 없어져 탄소 포함도가 낮은 연강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한 시간에 연강 5톤가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베세머가 개발한 제강법의 성과는 4~5시간에 50㎏을 생산하는 도가니제강이나 2시간에 250㎏을 생산하는 교련로와 비교할 때 가히 혁명적이었다.
베세머가 개발한 전로의 모식도

더 좋은 시계와 포신을 만들기 위한 헌츠먼과 베세머의 끊임없는 혁신 노력이 강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획기적인 대량생산 방식을 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