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 전기전자기업 지멘스(Siemens)는 현재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약 40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거대기업이다. 1800년대 중반 지멘스 가(家)의 형제들은 공학 기술 분야의 남다른 재능으로 인류문명의 다양한 분야에 발전을 가져다주었는데 철강산업의 제조기술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지멘스社 로고 (출처: 지멘스 코리아)>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특허법이 상대적으로 발명가에게 유리한 영국에 정착한 찰스 윌리엄 지멘스(Charles William Siemens)는 1856년 동생 프리드리히와 함께 축열 원리(regenerative principle)를 이용한 새로운 용광로를 창안했다. 축열 원리는 이미 1816년 스털링이 특허출원을 했던 것으로 연료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배기가스의 열로 연료용 공기를 가열해 노(爐)의 온도를 높이는 일종의 폐열(廢熱·waste heat) 회수 기술이다.
윌리엄은 이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노를 설계했는데, 노의 형태가 납작한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평로(平爐·open-hearth furnace)라고 불렸다. 윌리엄의 평로는 기존 제강법에 비해 동일한 연료를 사용하고도 철강 생산량을 20% 정도 증가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1857년 윌리엄의 사업 파트너인 쿠퍼(E. A. Cowper)에 의해 최초로 철강 제품 생산에 응용되었다.
윌리엄의 평로 기술은 철강산업뿐만 아니라 유리산업에도 응용되었는데 1862년까지 유리산업 분야에서 100여 개의 평로가 설치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작 철강제조 공정에는 슬래그를 분리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조건을 구현하고 지멘스 평로의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마땅한 내화물 등을 제대로 공급하기 어려워 보급이 지연되었다.
하지만 1864년 프랑스의 피에르 에밀 마르탱(Pierre Emile Martin)은 지멘스의 축열 원리를 이용한 평로에 고철을 집어넣어서 탈탄 작용을 쉽게 하도록 만들어 제강 분야에서도 지멘스가 창안한 방법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소위 지멘스-마르탱 평로법(Siemens-Martin Open Hearth Process)이라는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LD 제강법이 세상에 나오기 전인 20세기 중반까지 지멘스-마르탱 평로법은 주요 제강기술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활용되며 새로운 제강 시대를 이끌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양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독일·영국·프랑스 3개국 엔지니어들이 노력한 결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