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국의 급부상… 2004년 세계 조강생산량 10억톤 시대 맞아
경쟁방식 등 패러다임 변화… 각국 경쟁적 설비확장으로 공급과잉 심화
원료리스크 대비못한 철강사 도태… 포스코·아르셀로미탈 등 위상 유지
글로벌화 진전·시계 중산층 급증 등으로 '2050년 연간 40억톤' 전망
새 비즈니스 모델 창출·글로벌 생산기지 구축 기업이 미래 철강산업 선점
미래의 철강리더
세계 철강산업이 10억 톤 시대에 접어든 지 10년이 되었다. 철강생산은 2004년 처음으로 10억 4000만 톤을 기록해 10억 톤을 넘어선 이후 지난해 16억 톤 후반대(추정)인 것으로 나타나 매년 약 5%씩 증가한 셈이다. 경제성장률 변화에 따른 철강소비의 변화값을 철강소비탄성치라고 하는데, 이 기간의 세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7%이니까 경제성장률이 1일 때 철강소비는 1.3배 더 증가했다는 의미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성적이라 할 수 있는데도 우리가 처해 있는 철강산업의 현실은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세계 철강회사들의 수익률이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과잉이 수익하락의 중요한 원인인데, 앞으로도 당분간 공급과잉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미래에 살아남고 또 리더가 될 것인가. 지난 역사와 당면한 상황을 짚어보면서 미래 철강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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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개발한 혁신기술인 CEM(Compact Endless cast-rolling Mill)은 박슬래브를 연속 생산하고 바로 열간압연공정과 연결하여 열연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프로세스를 이용하면 기존 공정에 비해 에너지 소비를 약 50% 절감할 수 있다.
철강산업의 양적 성장과 리더기업 변화
세계 철강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73년 직전까지 연평균 6%씩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다 1973년 1차 석유위기 이후부터 약 30년 동안 7억 톤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연평균 수요증가율이 0.3%이니, 거의 정체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철강산업의 성장은 이제 끝났다는 자조 섞인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중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해마다 수요가 5000만 톤 이상씩 증가했고, 2004년부터는 10억 톤 시대를 맞게 되었다. 중국의 조강생산은 2000년대 연 15.5%씩이나 급증했는데, 같은 기간 세계 증가분의 84%를 차지했다. 중국은 급속한 산업화에 기반한 폭발적인 철강수요 증가를 배경으로 2000년대 들어 세계 철강산업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바야흐로 세계 철강산업의 차이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유일무이한 철강대국이 되었고, 지금도 세계 철강산업은 중국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세계 철강산업의 양적 성장은 단순히 물량의 증가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으며, 필수적으로 경쟁의 방식과 핵심경쟁 요소 등 패러다임 변화를 수반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었거나 잘 적응한 기업들은 주도자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쇠락하거나 도태되었다. 지난 역사를 보더라도 성장과 정체, 경기적인 변동을 거듭하면서 세계 철강산업의 주도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으로 이동했다. 이는 수많은 철강기업의 흥망성쇠와도 궤를 같이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40년 전인 1970년대 초반 세계 30대 철강사에 이름을 올린 많은 기업이 철강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는 철강사는 유에스스틸·신일철주금·JFE, 그리고 티센크루프에 불과하다. 한때 세계 철강산업의 주역이던 많은 철강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10억 톤 시대, 리더기업의 조건도 변모
최근 철강산업에서의 주도기업이 되는 조건을 바꾼 계기가 10억 톤 시대로의 진입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이후의 10억 톤 시대는 이전 30년간의 7억 톤 시대와는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10억 톤 시대에 들어오면서 원료와 환경 문제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고, 철강산업의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전되었으며, 공급과잉하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7억 톤 시대를 주도한 기업은 원료와 설비, 자재를 경제적으로 구매해서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저원가의 안정조업을 통해 염가의, 그리고 양질의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기업이었다. 이 같은 경제적인 생산능력에 프로세스를 잘 관리하는 비즈니스 역량을 갖춘 기업이 세계 철강업계를 리드했다. 이 기간 동안 이 모델을 가장 잘 갖춘 기업이 당시 신일철(현 신일철주금) 등 일본 고로사와 한국의 포스코였다.
일본은 원자재가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의 값비싼 선박에 의해 수송되는 수입 원자재는 일본 철강산업 형성 초기에 큰 부담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원료수출국인 브라질과의 협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브라질은 자국 내 철광석 운송과 항구, 철도 등에 대한 투자를 유럽이 아닌 일본에 맡겼고, 일본은 제철소를 연안에 건설함으로써 원료수송과 조달 단가를 크게 낮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브라질과 일본 모두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은 브라질 성공사례를 적용하여 선박기술 및 대규모 자본력을 갖추고 호주 내 광산에 대한 합작투자도 잇달아 성사시켰다.
그러나 10억 톤 시대에는 주도기업의 요건이 달라졌다. 이는 10억 톤 시대에 들면서 세계 철강산업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인데, 우선 파편화되었던 시장이 통합화되기 시작했고, 아르셀로미탈이라는 신생 강자가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면서 철강산업의 특성도 국위산업에서 글로벌 산업으로 변모시켜놓았다. 무엇보다 변화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철강 수입국으로서 전 세계에 남아돌던 철강재를 흡수하면서 일거에 공급과잉 현상을 해소했다. 반면 적지 않은 부작용도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료 문제였다. 중국의 철강원료 수입이 급증하면서 국제 철강 원료시장은 메이저 원료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공급자 시장’으로 전환되고, 이는 결국 국제 원료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원료 리스크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많은 철강사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부작용은, 각국이 경쟁적으로 설비확장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철강설비 과잉능력은 약 5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중 상당 부분은 중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0억 톤 시대의 주도기업은 다음 요건을 갖추어야 했다. 우선 원료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원료투자 등을 통해 캡티브 광산을 갖고, 장기 안정적인 원료조달 능력을 보유한 기업이 매우 유리했다. 또 가장 경제적인 글로벌 생산기지를 갖추고, 최적의 고객 포트폴리오를 확보하여 이들 고객에게 토털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도 주도기업이 될 수 있었다. 원료 면에서 강점을 가졌던 아르셀로미탈이나 타타스틸, 브라질의 게르다우 등 원료 보유국 철강사가 부상했고, 여기에 중국의 바오스틸과 허베이스틸 등 철강사들이나 신일철주금, 포스코와 같이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진 기업들도 전후방산업에 대한 협상력을 갖춤으로써 주도기업의 위상을 유지했다.
미래 리더는 재무 성과의 획기적 향상이 관건
한편 세계 철강산업은 지난 20세기 동안 주도기업의 변화 속에서도 양적인 성장 측면에서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앞서 본 대로, 전반적으로 철강수요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여타 산업과 비교해도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73년 직전까지 철강산업의 연간 성장률은 6%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이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양적 성장 과정에서 철강회사들이 투입한 자본의 효율성이나 수익률 등 재무적인 성과 측면에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철강 컨설턴트인 로드 베도스(Rod Beddows)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철강회사의 2012년 평균 투하자본수익률(Return on Capital employed)과 EBIT(Earning before Interest & Tax)는 각각 8.1%와 5% 미만을 기록했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투하자본수익률과 EBIT 평균은 각각 12.6%와 5.3%였는데, 30년 동안 평균을 상회한 실적을 기록한 기간은 글로벌 경기가 호황이던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에 불과했다. 또한 철강기업들이 평균적으로 높은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을 가지고 있어 자본수익률보다 높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철강기업들의 열악한 재무성과는 최근의 잉여현금흐름이 5년 연속 마이너스라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철강회사들의 재무성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악화되었는데, 이는 수요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 등 개도국 철강사들이 계속 생산능력을 확장함으로써 공급과잉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도기업이나 그렇지 못한 기업 모두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고, 생존과 함께 수익성 회복이 핵심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미래 철강산업을 이끌어갈 리더는 철강업계 전반의 핵심과제인 저수익 구조의 틀을 깨고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미래 철강 리더는 누가 될 것인가
로드 베도스 같은 철강 컨설턴트는 글로벌화의 진전과 인구증가, 그리고 세계 중산층의 급증으로 2050년에는 40억 톤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공급과잉이 계속되는 가운데 철강재의 범용화는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요성장의 중심축은 이동할 것이고, 주도기업 또한 새로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범용재 성격이 강한 철강의 경우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철강산업 전체적으로는 제1위의 기업이 점유율 8%에 불과할 정도로 분화되어 있으나, 철광석은 해상 물동량 기준 3대 회사가 65%를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협상력에서 그만큼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통합은 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공급과잉과 철강재의 범용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략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철강재의 범용화가 진전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일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서 경기의 불안정성이나 변동성이 한층 확대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기업이 미래 철강을 주도할 것인가.
우선 새로운 혁신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라야 한다. 철강산업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술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특히 파이넥스(FINEX)와 같이 원료와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공정기술이 중요할 것이다. 여기에 철강재의 범용화를 극복할 수 있는 차별적인 프리미엄 제품의 개발능력도 빠질 수 없다. 추가하면, 단순한 기술서비스를 넘어서서 고객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솔루션 가공기술력도 중요하다. 즉 프로세스 기술과 프리미엄 제품 기술, 여기에 차별적인 솔루션 기술까지 3박자를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둘째, 기존 생산/판매 중심의 철강 비즈니스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는 기업이라야 한다. 현재의 공급과잉 상황에서 기존 모델을 고수하고서는 수익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즉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화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통합되고 두 산업 간 차별성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제트엔진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롤스로이스는 단순히 항공사에 엔진을 초기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보수하는 서비스를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한편 신기술의 빠른 출현, 지적재산권 및 새로운 지식기반 비즈니스의 출현으로 기존 경쟁우위가 점차 소멸하여 새로운 가치사슬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철강산업에 있어서도 생산과 판매 중심의 기존 모델을 넘어서서 조업 및 운영기술과 경영노하우, 브랜드 등을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만들어내는 기업이 미래 리더기업에 한발 다가서게 될 것이다.
셋째, 글로벌화는 앞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앞으로의 경쟁은 새로운 철강수요, 철강시장을 가진 성장시장 선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다. 따라서 최적의 생산기지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하여 성장잠재력을 보유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갖는 기업이 주도기업이 될 것이다. 글로벌 가공/판매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 글로벌 철강시장에서 어떤 기업과 협력하여 강건한 생태계를 구축하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다시 내일의 동지로 바뀔 수 있는 시대다.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따라서 철강뿐만 아니라 업종을 초월한 초일류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강건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미래 주도기업의 조건이 될 것이다.
지난 주도권 이전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번 경쟁력을 상실한 철강업체가 기력을 회복해 일어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환경변화를 예측, 핵심 경쟁요소의 변화를 감지해서 다른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적 경쟁우위 요소로 발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문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박현성<포스코경영연구소>
게재지: 포스코신문<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