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 5대 철강 생산·수요국 진입 등 국제적 위상 ‘우뚝’
세계 철강소비 부진·보호주의 장벽 높아 수출 활로모색 난제
중국산 수입재·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도입 선제적 대응 중요
성장잠재 시장 선점 위해 연관산업과 강건한 생태계 구축해야
11.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
한국 철강산업은 지금 지속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내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세계 시장도 공급과잉에 직면해 있다. 특히 초과공급의 대부분이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 철강산업의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본다면, 철강시황의 부침 속에서도 세계 철강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분간은 자원의 풍부함이나 경제성, 환경친화성 면에서 철을 대체할 만한 소재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1900년 2800만 톤에 불과하던 연간 세계 철강 생산량이 2014년 현재 16억 5000만 톤에 달했다. 2050년까지 40억 톤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한국 철강업의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철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할 수 있다. 위기와 기회가 병존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 철강산업의 성적표는 A+
돌이켜보면, 한국 철강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이었고 세계 철강업계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아왔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실제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세계 속의 비중이 계속 높아져왔다. 숫자로 한번 보자. 세계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0.1%에 불과했으나, 2013년에는 4%까지 증가했고, 세계 순위도 35위에서 5위의 생산국으로 도약했다. 같은 기간 중 조강수요는 연평균 약 10%씩 증가해 세계 시장점유율 3.3%에 이르는 세계 5대 철강 수요 국가가 되었다. 또한 철강 수출량도 1970년에는 10만 톤에 불과했으나 1990년 430만 톤, 2013년에는 2890만 톤으로 계속 증가했고, 이러한 증가세를 반영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1%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비약적 성장의 결과로 세계 철강산업 속에서의 위상도 크게 높아져왔다. 단적인 예가 1990년대 중반 한국이 개도국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철강협회 회장을 배출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세계철강협회 회장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 회원사들이 번갈아가면서 맡았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세 번이나 세계철강협회 수장을 배출했는데, 그만큼 한국이 세계 철강업계에서 인정을 받아왔던 셈이다.
내우외환의 한국 철강산업
현재 우리 철강산업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수출시장이나 국내시장의 환경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경쟁환경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세계 철강소비의 부진에다 보호주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어 수출이 활로를 찾기 쉽지 않다. 세계 시장을 향한 밀어내기식 수출과 자국시장 방어를 위한 보호주의 간 충돌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철강시장에서는 가격하락과 경쟁 열위기업의 도태 등 구조조정도 일상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시작된 ‘공급과잉’의 후폭풍과 엔저를 무기로 한 일본 철강회사들의 부활로 수출시장에서의 경쟁 또한 만만치 않다. 일본과 중국의 협공을 당하는 샌드위치 신세인 셈이다. 눈을 국내시장으로 돌려보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인당 강재소비가 거의 포화점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200㎏을 상회했다가 지금은 1100㎏대인데, 세계 최고수준이다. 선진국 평균이 600㎏에 못 미치고 있고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가장 높았던 때가 인당 800㎏이 조금 넘었다. 선진국들의 경험으로 보면 국내 철강소비의 정점은 벌써 지났다. 실제로 국내 철강소비 증가세는 해를 거듭할수록 둔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산 강재 수입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니 국내시장 상황 또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국내 철강산업의 성장 정체와 수익성 하락이다. 국내 11개 철강업체의 매출액은 2011년 81조 원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고,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0년 11%를 정점으로 2013년 현재 5.5%까지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원료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특히 중국 철강산업의 과잉규모가 3억 톤 내외에 달하기 때문에 아시아 철강시장의 수급이나 가격 측면에서는 계속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래 철강산업의 환경변화를 잘 읽는 것이 중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한국 철강산업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또 위상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미래 철강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것이다.
세계 철강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철강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철강 전문가는 글로벌화의 진전과 인구증가, 그리고 세계 중산층의 급증으로 2050년까지 지금보다 약 3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수요성장의 중심축은 이동할 것이고, 주도기업 또한 새로이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과잉이 계속되고 철강재의 범용화는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철강재의 범용화가 진전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일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철강회사 간에 차별화 전략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전략은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따라서 프리미엄 제품기술과 혁신 공정기술을 먼저 개발해 기술주도권을 가지려는 경쟁도 할 것이다.
게다가 철강산업에 대한 환경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연원료는 고갈되어가며, 대체재는 끊임없이 철강재 시장을 잠식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환경규제의 강화와 고품위 연원료 부존량 감소는 고로의 위상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일정부분 전기로와 새로운 생산기술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환경 규제로 화석원료 사용을 줄여나가고, 궁극적으로는 화석연료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철강제조법이 상용화될 가능성도 있다.
생산과 판매 중심의 철강 비즈니스도 점차 변화될 것이다. 단순히 값싸고 질 좋은 제품판매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판매하고 고객을 창출하는 기업이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철강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조업기술 등을 패키지로 판매하거나 브랜드와 운영역량을 파는 대리경영의 형태도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제조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혁신적인 스마트 공장이나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서 생산하는 이동형 공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당장 가장 시급한 것은 중국산 수입재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비용부담 증가에 대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중국산 수입재에 대한 대응으로 단순히 보호장벽을 높이는 대책은 실시하기도 어렵거니와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안전과 환경 등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품질·규격의 기준을 높이고 이에 맞는 정상적인 제품이 사용되고 수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불법 수입재가 유입된다면 보호조치 발동도 동원할 수 있어야 하다. 또 올해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되면 철강업계의 원가부담이 커질 것이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 등 경쟁국보다 빨리 실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업계 차원의 대응도 시급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철강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해 경쟁력을 복원해나가는 것이고, 업계 차원에서는 상생협력의 지혜를 발휘해 강건한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특히 업계 차원에서의 생태계 경쟁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 내 소통과 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국가 차원의 혁신기술은 열린 혁신을 통해 협력할 필요가 있고, 고객이 마음껏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고객맞춤형 제품개발에 주력해 고객가치를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철강이 가지는 업 자체의 특성에 맞추어 사회적·경제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내 시장에서는 강건한 협력의 생태계를 만들면서 시장은 글로벌화하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의 대응도 필요하다. 글로벌화는 앞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앞으로는 새로운 철강수요, 철강시장을 가진 성장시장을 누가 선점할 것인가의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따라서 최적의 생산기지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성장잠재력을 보유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연관산업과의 상생과 협력의 생태계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 적용할 수도 있다. 앞으로 글로벌 철강시장에서는 어떤 기업과 협력해 강건한 생태계를 구축하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지경을 글로벌 시장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 점차 줄어드는 내수시장에만 기대고 있을 수 없다. 글로벌 경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신흥지역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도시화도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는 인프라 관련 수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또 중산층 인구의 증가는 내구재 소비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철강시장 성장 축이 중국과 인도 중심에서 이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미얀마, 아프리카 등으로 다원화되고 있다는 것도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과 산업의 융합화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제조와 ICT의 융합을 통해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거나 서비스 패키지의 다양화, 단순 제품판매를 넘어선 무형자산의 판매 등이 일반화될 것이다. 예를 들면 IoT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적용해 지능화, 물류혁신, 에너지 효율 개선, 고장 예측진단 정밀화 등의 효과를 봄으로써 제조현장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애플과 같이 다양한 제조현장의 제품을 활용해 융합형 솔루션을 기획해 판매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미래 철강산업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언제나 위기도 있었고, 기회도 동시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세계 철강산업은 새로운 변태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철강산업도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까지 주어진 패러다임에 잘 적응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선도자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변신을 선도하는 고민들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박현성<포스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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