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의 파고, 제조업 혁신으로 넘자
포스코경영연구원 곽창호 원장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자체 분석에 의하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2.5%에 그칠 전망이다. 금융위기로 성장률이 급락했던 2009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내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내수 회복을 근거로 3%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성장세의 둔화 등 대외 여건을 고려할 때 내년 역시 2%대 성장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그간 경제성장을 주도해 왔던 수출이 예전 같지 않다. 1~10월 수출은 지난해 대비 7.6%나 줄었다. 특히 10월 수출은 15.8%나 줄어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세가 커지는 모습이다. 물론 수출 부진의 일차적 원인은 세계경기의 침체 때문이다. 특히 신흥국 성장 활력이 둔화되면서 한국과 같은 중간재 수출국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조업 경쟁력 저하에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지난해 제조업 매출액은 1.6% 감소했는데 이는 1961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영업이익률 역시 4.0%로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낮다.
지금 우리 제조업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중국의 추격에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9월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60%는 자사 제품 경쟁력이 5년 내 중국과 비슷해지거나 추월 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는 처지다. 그렇다고 탄탄한 일본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따라잡을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벼랑 끝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생존과 성장을 담보할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저성장 파고를 넘을 해법은 디지털 제조 혁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던가.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기업경쟁력도 마찬가지다. 눈 앞에서 시시각각 전개되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PC에서 모바일,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물(IoT)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이 우리 기업의 활로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제조 혁신의 물결을 타고 저성장 시대를 헤쳐 나가고 있는 지멘스와 GE의 사례를 보자.
독일의 지멘스는 ‘스마트 팩토리’ 구현으로 원가혁신을 이룬 대표적 사례이다. 시스템 컨트롤러를 생산하는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해 공정 자동화 비율을 100%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생산량은 8배나 늘었지만 불량률은 0.5%에서 0.0011%로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생산성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미국의 GE는 ‘산업인터넷’이란 개념을 통해 가치혁신을 이룬 사례이다. 주지하듯이 산업인터넷이란 하드웨어적 역량에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한 개념이다. GE는 본래 영위하고 있는 주력 사업에 소프트웨어적 기술을 적용해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GE의 이멜트 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대담한 비전을 발표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지멘스와 GE의 행보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능동적 자기파괴이다. 하드웨어적 강점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디지털 트렌드를 적극 수용했던 것이 지멘스와 GE의 성공 비결이다. GE는 회사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가전부문을 포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 성장의 견인차였던 금융부문까지 과감히 축소한 바 있다. ‘비워야 채운다’는 평범한 진리는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다음은 장기적 관점의 투자이다. 양사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이 넘도록 디지털 기술에 대해 꾸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제품, 공장, 고객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구축한 고유의 플랫폼으로 경쟁우위를 삼았던 것이다. 광속의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투자만큼은 오랜 시간 일관성과 뚝심으로 추진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 제조업체들의 행보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다. 긴 시각에서 봤을 때 디지털 혁명의 도도한 물결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디지털 혁신에 나서야 한다. ‘무늬만 혁신’의 졸속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기반부터 다져가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우선 각 회사별로 경쟁력 강화에 핵심적인 데이터를 식별하고 데이터 표준화 등을 통해 연결성을 강화하는 작업부터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제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정비도 필수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이미 ‘제조업 3.0 전략’을 발표하고 제조업 스마트화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특히 1조원을 들여 2020년까지 스마트 공장을 1만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가지 지적할 점은 향후 제조업 혁신 정책은 보다 융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신기술 자체보다는 이들이 어떻게 전통 제조업의 혁신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제품 혁신 못지 않게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서비스 혁신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도 대폭 정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혁신적 융합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처에 존재하는 중복 규제를 단순화 한다거나, 대기업이 보유한 요소기술이 중소기업 전반에 용이하게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가 성숙할수록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 없이 부국이 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휴대폰, 철강,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등 우리의 제조 경쟁력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만의 고유한 경쟁 기반이다. 이러한 강점에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IT 신기술이 성공적으로 결합된다면 미래 세상의 제조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제조업 3.0 전략의 성공적인 이행과 민관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로 제조 강국, 한국의 위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게재지: 코스닥저널 2015.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