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금속 중 하나인 철은 녹이 잘 스는 대표적인 금속이다.
철이 녹스는 현상을 열역학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금속 상태의 철(Fe)보다 철의 산화물이나 수산화물
형태가 더 안정적이다. 따라서 철은 산소와 수분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산화되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특히 습도가 높거나 염분 등이 존재하면 전기화학적 부식 반응이 촉진되어 녹이 더 빠르게 슨다.
반면 모든 금속이 철처럼 쉽게 산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금(Au)이다. 금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귀금속으로, 일반적인 대기 환경에서는
산소나 수분과 쉽게 반응하지 않아 철처럼 쉽게 부식되지 않는다.
부식과 관련해 흥미로운 또 다른 금속은
알루미늄이다. 알루미늄은 산소와 쉽게 반응하지만, 표면에
매우 얇고 치밀한 산화알루미늄(Al₂O₃) 피막을 빠르게 형성한다. 이 피막이 내부의 알루미늄과 산소·수분의
추가 반응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를 부동태화(Passivation)
라고 한다. 따라서 알루미늄은 산화되기 쉬운 금속임에도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뛰어난 내식성을
갖는다.
철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페인트나 기름, 도금 등을 이용해 산소와 수분의
접촉을 차단한다. 아연도금강판은 표면을 보호하는 동시에 손상이 발생하면 철보다 산화되기 쉬운 아연이
먼저 산화되는 희생 방식(Sacrificial Protection) 효과를 갖는다. 또한 철에 크롬 등을 첨가한 스테인리스강은 표면에 치밀한 크롬 산화물 보호 피막을 형성해 높은 내식성을 가진다.
이처럼 부식은 일반적으로 소재의 성능과
수명을 떨어뜨리는 현상이지만, 인류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제거하는 이러한 원리를 역으로 활용하여 정밀한
제품 제조기술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식각(Etching)이다.
반도체 제조에서 말하는 식각은 철에 녹이 스는 자연적인 부식과 동일한 현상은 아니지만, 화학반응을 이용해 특정 물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원리를 갖는다. 반도체 제조에서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 패턴을 만들기 위해 포토리소그래피로 원하는 부분을 구분한 뒤 노출된 물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식각 공정을 사용한다.
초기 반도체 제조에서는 주로 습식 식각(Wet Etching)이 활용되었다. 액체 상태의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실리콘, 실리콘 산화막(SiO₂), 금속 등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 산화막에는 불산(HF) 계열 용액이, 실리콘 식각에는 KOH와 같은 알칼리 용액이 사용된다.
이와 유사하게 인쇄회로기판(PCB)에서는 염화철(FeCl₃) 등의 용액으로 불필요한 구리를 제거해 원하는 배선 패턴을 만든다. PCB의 구리 식각과 반도체 습식 식각은 대상 물질과 화학약품은 다르지만, 화학 반응을 제어해 원하는 부분만 제거한다는 공통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회로가 미세화되면서 습식 식각만으로는 원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한계가 나타났다. 액체를 이용한 식각은 모든 방향으로 방향이 비슷하게 진행되는 등방성(Isotropic) 식각이 되기 쉬워 회로 선폭이 작아질수록 정밀한 수직 구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건식 식각(Dry Etching) 기술이 발전했다. 플라즈마에서 생성된 이온과 활성종을 이용하여 물질을 화학적·물리적으로 제거하며, 반응성 이온 식각(RIE) 등을 이용하면 특정 방향으로 식각하는 이방성(Anisotropic) 식각이 가능해 매우 미세하고 깊은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반도체는 나노미터 수준으로 미세화되는 동시에 3D NAND, FinFET, GAA와 같이 구조 자체가 3차원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높은 종횡비(High Aspect Ratio)의 구조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건식 식각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자연에서는 철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골칫거리였던 ‘부식’과 유사한 화학반응의 원리가 인간의 정밀한 제어기술과 결합하면서, 나노미터 수준의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핵심 제조기술인 ‘식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